볼 수 있는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집과 사무실, 공공장소 등 우리가 자연스럽게 머물거나 지나치는 공간의 경계는 수개월 동안 지속된 팬데믹으로 인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최전선으로, ‘뉴 노멀’ 시대에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장소가 되었다. 급변하는 일상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제기되는 이 때, 본 전시는 병원으로써의 기능을 이미 오래전에 상실한 (구)국군광주병원을 광주 출신이거나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2명의 작가와 다시 찾는다.
1964년 개원한 이곳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학생과 시민이 치료를 받았던 병원이다. 5·18민주화운동 사적지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 함평으로 이전한 이후 병원은 최근까지 도심 속에서 폐허처럼 남아있었다. 작가들은 1층의 체육실을 중심으로 병원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보이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침묵 사이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5·18의 역사와 기억, 아픔과 치유, 폭력과 저항이 공존하는 장소이자 의료 공간으로써 (구)국군광주병원은 각 작품에서 애도나 치유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이자 배경이 되기도 하며, 사유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5·18민주화운동은 박제된 과거가 아닌, ‘가능한 역사(potential history)’로 오늘의 일상에서 우리와 마주한다.*
군사시설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구)국군광주병원은 지역에서 격리되고 광주 시민의 일상에서 잊혀졌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 커미션(GB커미션)를 시작으로 이곳은 일시적으로나마 ‘전시장’의 성격을 부여받았다. 올해 제13회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열리는 이번 전시는 병원의 일시적 부활에 동참하는 셈이지만, 궁극적으로 이곳은 ‘국립 트라우마센터’ 로 향후 활용방안이 계획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계에 선 병원이 우리에게 어쩌면 마지막으로 건네는 손짓에 응답하며, 서로 다른 배경의 기획자와 작가들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뚜렷하게 형상화되고 언어로 구체화된 공간 너머로 주고받는 시선들은 5월 광주의 의미를 다시 조망하고 환기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는 처참한 희생과 항거 끝에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아직까지 5·18 진상규명 문제가 시대의 숙제로 남아있지만 역사적 증명과 사실은 확연하게 내려진 상태이다. 과연 2021년과 1980년의 간극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광주 민주화운동은 종료된 것이 맞을까? 과거 독재정권에 대응하는 시간으로 존재했던 민주주의는 현재 촛불 혁명과 시대의 정치·사회적 공동체로 발현되고 있다. ‘오월’ 광주는 한국 사회문제 및 문화예술 현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번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또한 우리의 시선이 간과해 온 예술의 역사적 발생과 그 변화를 추적하고자 한다.
‘광주의 5월 그리고 지난 40년의 시간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건네고 싶을까?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또 다시 5월을 겪을 세대들에게 어떤 미래적 의미를 전해야 할까?’ 우리의 역사는 누구의 소명이나 상처가 아니고, 기억은 누구의 책임으로 시작 된 의무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기억은 삶 자체이자 존재일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글로 그림으로 다 담을 수 있을까. 과거의 그들이, 지금의 우리가 미래의 다음 세대에게 그 의미를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의 일상적 삶을 통해 남겨진 의미를 더 나은 미래로 전달해야한다.
* Ariella Azoulay, The Potential History: Unlearning Imperialism (London: Verso, 2019).
제목 | 볼 수 있는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
커미셔너 | 김선정 |
기획 | 이선, 임수영 |
기간 | 2021. 4. 1. – 5. 9. |
관람시간 | 오후 2시 – 6시 예약하기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
관람요금 | 무료 |
장소 | 구 국군광주병원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1028(LK메디피아 빌딩 골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