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의 신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5월 광장의 어머니들’(Madres de Plaza de Mayo)은 매주 화요일마다 Pirámide de Mayo(5월의 탑)를 빙 돌면서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군사정권 기간(1976~1983)에 실종된 자식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행위를 통해 매주 이들 어머니들은 역사와 미래가 정지된 새로운 시간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한 채, 아르헨티나에 새로운 인권 및 정치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들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그들의 시간은 매주 재탄생함과 동시에 이미 가까운 미래의 일부가 되었다.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5월의 탑 주위를 돌기 시작하고 몇 년 후인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는 무장한 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를 둘러싸고 비상계엄령과 계엄군의 폭력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5일 만에 시청이 접수되고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되자, 시민들은 흡사 시간의 분수대에 던져진 돌이 잔물결을 일으키듯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분수대 주위에 집결하였다. 물결이란 본질의 변화 없이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공간성의 확장 또는 동요를 의미한다. 물결은 시간을 압축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팽창시킨다. 가장 먼 물결 –가장 크고 가장 먼저 보이는– 은 끊임없이 퍼져나간다. 이처럼 시간은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의 투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반복되며 진행 중인 이 저항의 이야기는 기원 신화의 모태가 될 두 시간의 만남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신화는 네 명의 한국 작가와 네 명의 아르헨티나 작가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들은 역사적인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만들고, 이미지 제작을 통해 이념을 지키고 전파하며, 가까운 미래를 기억의 첫 기착지로 생각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특별한 만남은 서로 먼 두 나라 사이에 공통어를 창조함으로써 20세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에 존재했던 군부독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고통스러웠던 경험,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방법, 그리고 그것이 남긴 여러 가지 기억들을 공유하기 위해 이뤄졌다.
가까운 미래의 신화의 참여 작가들은 허구(픽션)에는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이념을 확인하거나 재고하여, 과거로부터 미래를 도출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허구의 영역에서는 정보가 신화화 될 수 있고, 신화는 대중의 믿음을 확인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이다. 주체에 따라 이념 표현의 방식이 달라지듯, 이들 작가들은 다양하고 새로운 비주류 방식과 주제, 소재를 사용해 과거의 이야기들을 재구성한다. 이들은 1960년대 후반에 나온 군사독재 관련 영화, 한국의 옛 민중가요, 퇴화된 공예 기법, 방치된 기록들, 그리고 샤머니즘 의식 등을 적극적이고 시적인 방법으로 되돌아보고, 폭력과 비극을 목격한 여러 형태의 증인들과 협력한다. 이러한 작업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폭로하기 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다.
이들의 특별한 만남은 서로 먼 두 나라 간에 공통어를 만들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방식으로 홍영인 작가는 5.18민주화 운동의 유산과 세계 각지의 다른 민주화 운동과의 관계를 다양한 참여자들과 함께 함으로써 살피고자 한다.
홍영인 작가의 퍼포먼스 작품<5100:오각형>은 다양한 참여자들이 5.18민주화 운동 기록관의 이미지와 유사한 동작들을 안무화하여 1980년대 광주 시민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구현했다. 퍼포먼스 및 그의 자수 작품 <이중 만남>은 현재의 우리를 보다 복잡한 시간의 차원 속으로 데려다주며, 이로써 우리의 몸은 역사를 살아 숨쉬게 하는 주체가 된다.
<5100: 오각형>은 광주의 민주화 운동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된 신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안무를 재현하는 작업이다. <5100:오각형>은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오후 7시에 파르크 드 라 메모리아의 PAyS 홀에서 유일하게 공연될 예정이다.
제목 | 가까운 미래의 신화 |
큐레이터 | 하비에르 빌라, 소피아 듀런 |
일시 | 2022.12.2. – 2023. 3. 5. |
관람시간 |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1:00 – 17:00 주말과 공휴일: 11:00 – 18:00 월요일 휴관 |
장소 | 파크델라메모리아 , ‘현재, 지금 그리고 영원’ 전시장 6745,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무료 입장 |
CURATOR’S BIOGRAPHY
하비에르 빌라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8)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전시기획자다. 2013년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 현대미술관(MAMBA)의 선임 큐레이터로 활약하고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네덜란드의 드아펠 큐레토리얼 프로그램 (2010-2011)에 참여한 바 있다. 독립기획자로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여러 해외 기관에서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 중에는<Fluiten in het Donker> (드아펠 아트센터, 암스테르담), <A Tale of Two Worlds>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실험적 라틴아메카와 MMK 컬렉션의 대화 1944-1989> (MMK, 프랑크푸르트/MAMBA) 전시를 기획했으며 제13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협력 기획진으로 참여했다. MAMBA의 선임 큐레이터로<Diego Bianchi. El presente está encantador (2017)>, <Liliana Maresca: El mojo avizor. Obras 1982–1994 (2017)> and <Una historia de la imaginación en la Argentina (2019)>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디 텔라 대학 교수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재직했으며,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위한 세미나를 2014, 2018, 2019년도에 이끌었다. 2005년부터Rosa Chancho 아티스트 컬렉티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2019년 리옹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현재 그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역사에서 발견되는 허구와 정치, 영토의 삼각관계를 연구하며 시간성을 논의하기위한 수단으로써 예술적 물질의 가변성을 탐구하고 있다.
소피아 듀런 (부에노스 아이레스, 1984)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사학자이자 전시기획자다. 엘살바도르 대학교에서 미술 역사학 및 경영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라틴 아메리카 미술사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네덜란드의 드아펠 큐레토리얼 프로그램 (2018-2019) 과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의 리서치 펠로우쉽 (2019)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현대미술관 (MAMBA)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Edgardo Antonio Vigo 개인전>, <Sergio Avello 개인전>, <Elba Bairon 개인전>, <Lino Divas 개인전> 등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2011년부터 소피아는 독립 예술 공간La Ene,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2015년부터2018년까지 디렉터로 활약했다. 현재 그녀는 라틴 아메리카의 탈식민지적 시각과, 무의식의 탈식민지화, 예술적 행위, 액티비즘, 남반구의 다양한 지역적 전통에 대한 관계성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