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봄
5.18 민주화운동은 평범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던 20세기의 유일한 사례로 기념된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지속된 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의 자발적인 조직화 능력을 보여주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때 처음 발현된 광주시민들의 이러한 능력은 그 후 광주의 민주적 통치와 군대의 재진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5월27일 결국 군대가 다시 광주를 장악하게 되었지만, 이 열흘의 시간은 1980년대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반독재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1987년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직접선거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그 후 199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광주학살의 일부 책임자들이 내란 및 폭력교사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1980년의 5.18 민주화운동과 이 운동이 보여준 시민의 저력은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시가 1995년에 설립한 재단이다. 이후 수십 년간 광주비엔날레는 깊은 상처가 된 5.18을 기억하기 위한 신작들과 전시를 선보여 왔다. ‘민주주의의 봄’은 역대 광주비엔날레 및 특별전, 5.18 민주화운동 기념 전시에서 소개됐던 작품들을 한데 아우른다.
두 층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술작품들과 기록 자료들이 나란히 소개된다. 3층에서는 당시 한국기자들이 찍은 사진들,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순간들과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주는 울림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홍성담의 목판화 작품들(1980년대)과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 I>(1981) 등 민중미술 작품들은 거리에 흩뿌려진 피를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이 잔혹하고 치열했던 날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기록한다. 임민욱의 <네비게이션 아이디>, <X가 A에게>(2014)와 루마니아 작가인 미르세아 수치우의 <먼지에서 먼지로>(2014) 등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은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기록의 언어를 구현한다.
2층에서는 비평가이자 미술사가인 김진하 큐레이터가 특별 기획한 광주의 역사적 목판화에서부터 영정사진을 통해 기억과 망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노순택 작가의 사진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록의 언어와 기록 공유의 언어들을 소개한다. 아카이브를 방불케 하는 전시실 중앙에서는 8월 27일에서 11월9일 사이에 신문에 인쇄된 이미지로 구성된 백승우 작가의 <연상기억법>(2018)과 민주화운동에 관한 문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을 통해 신군부의 잔혹함을 서독 전역뿐 아니라 해외 파견 한국인 근로자들에게까지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소장했던 영상과 사진들도 전시된다. 미국의 팀 셔록 기자가 집대성한 자료들은 미국정부가 한국 군부 독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이 자료들은 대부분 5.18 기록관에서 보관 중이며 일부는 개인 소장품이다.
<광주이야기>(1996)는 사진작가 오형근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꽃잎>(1996)의 촬영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스틸 사진작품으로, 두 층에 걸쳐 전시된다. 고문의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한국의 한 하급 병사에 대한 가상의 영화 포스터 <광주탈출>(2002)도 2층과 3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봄’은 관람객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그저 단순한 역사적 순간으로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민주주의의 미래를 조망하는 기회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미술작품과 역사적 자료들을 나란히 선보이는 이 전시는 역사와 기억의 미묘한 경계를 허물며 민주화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제목 | 민주주의의 봄 |
큐레이터 | 우테 메타 바우어 |
보조 큐레이터 | 캐슬린 딧지그 |
일시 | 2020. 6. 3. – 7. 5. (월요일 휴관) |
관람시간 | 12:00 – 19:00 |
장소 | 아트 선재 센터 (03062)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3길 87 |
무료 입장 |
CURATOR’S BIOGRAPHY
우테 메타 바우어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현대미술센터(NTC CCA)의 창립 이사이자 동 대학 예술디자인미디어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까지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건축 및 기획 학부 부교수로 재직했다. 제11회 카셀도큐멘타(2001~2002)에선 총괄 디렉터인 오쿠이 엔위저와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제3회 베를린 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다. 2015년에 폴 하 MIT 시각예술 감독과 공동 기획한 미국관의 조안 조나스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 국가별 부문 특별 표창을 수상했다. 바우어는 2006 광주비엔날레 국제심사위원, 2011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코스의 지도교수로 참여했다. 이후 2012년에는 (재)광주비엔날레와 비엔날레 협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세계 비엔날레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후 한루와 함께 공동대표로 기획했다.
캐슬린 딧지그는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예술디자인미디어부 박사 후보생이다. 우테 메타 바우어 교수의 지도 아래 동남아시아의 냉전 전시 역사에 대해 연구 중이며, 냉전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코넬대학교와 다카 예술 서밋이 공동주최한 게티 재단의 미술사 프로젝트: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근대미술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