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 2018
장소 특정적 설치
작가, 뉴욕 303 갤러리, 토리노 갤러리아 프랑코 노에로,
런던 맷츠 갤러리, 베를린 노이게리엠슈나이더 제공.
(재)광주비엔날레 커미션
구 국군광주병원을 처음 맞닥뜨린 그날, 작가는 전후 미국에서 왔을 법한 경첩과 문, 전등 스위치와 부품, ‘Made in Japan’이 찍혀 있는 개수대 등 병원 건물의 면면을 통해 한국사를 목도했다. 병원은 이러한 관계들을, 기득권에 대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려주며 그러한 관계와 기득권이 어쩌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병원 곳곳에 산재한 거울은 1980년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 구 국군광주병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5·18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시민운동이 일어난 까닭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준다. 병원을 배회하는 동안 작가는 텅 빈 건물에서 유형(有形)의 부재(不在)와 같은 존재감을 느꼈다.
작가는 거듭 또 다른 존재를 목격했다. 때로는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오후 햇빛에 밝게 형체가 드러나는 그 인물이 누구인지 작가는 금세 알아차렸다. 병원 건물 내부의 수많은 거울에 반사된 작가 본인의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전에 거울을 들여다보았던 이들의 시선이 쌓이고 모인 우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작가의 마음이 요동쳤다. 거울들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증인이자 그간 목격한 역사로 가득 채워진 암호화된 위패이며 동시에 결코 수정되는 법 없이 그저 쌓이기만 하는 사진들이었다.
작품은 병원 본관에서 거울을 떼어내는 부분과 이 거울들을 교회에 재배치하는 부분, 두 가지로 구성된다. 거울 제거는 거울 속에 압축된 은밀한 역사를 제거하는 정화의 행위로 볼 수 있다. 한때는 액체였으나 이제는 고체가 된 거울은 거울이 목격한 진실을 해독할 얼어붙은 암호로 존재한다. 세속화됐지만 아직도 예배의 장소로 불리는 오래된 교회에 거울을 다시 거는 행위는 거울들에게 새로운 앞날을 제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작품, 새로운 구성으로서 이전의 거처와의 결별, 과거라는 연옥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마이크 넬슨(1967년생, 영국)은 공간의 내연과 외연을 재해석하는 복잡한 대형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서사 구조의 변혁을 통한 공간 구조의 실현과 그 속에 배치된 오브제에 중점을 두는 넬슨의 작품은 관객을 그 공간 속에 완전히 잠기게 만들어 이러한 환경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뒤흔든다. 작가는 목적론적 서사가 아닌, 다층적이며 때때로 ‘분위기’ 같은 표현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파열된 서사들을 통합해 의미를 제시한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참여 작가이며 두 차례 터너 상 후보에 올랐다(2001, 2007). 최근 «The Asset Strippers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 테이트 브리튼, 런던, 2019), «L’Atteso»(Officine Grandi Riparazioni, 토리노, 2018)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뉴욕의 303 갤러리, 토리노의 프랑코 노에로 갤러리, 런던의 매츠 갤러리, 베를린의 노이게림슈나이더 갤러리 소속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