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위한 습작›, 2006
종이에 연필
36 × 50.9 cm
‹천지를 위한 드로잉›, 2006
종이에 인디아 잉크와 색연필
50.9 × 36 cm
이불 스튜디오 제공
이불의 ‹천지›는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야기한 물고문에 사용된 욕조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모더니즘 건축가 김수근이 고문 전용 건물로 설계한 서울 도심 주거지 소재의 대공 분실에는 고문실마다 욕조가 설치됐다. 욕조 가장자리는 백두산을 본뜬 형상이다. 정상을 기준으로 북한과 중국의 영토를 나누는 백두산은 기원전 946년 화산 폭발이 일어났던 휴화산으로 분화구에는 화산 호수 천지가 자리 잡고 있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잔인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공산당이 사주한 내란행위로 규정했는데, 이불의 ‹천지›는 민주화를 향한 한국의 열망을 대표하는 5·18민주화운동을 냉전으로 인한 남북 분단과 연결 짓는다. «민주주의의 봄»에서는 ‹천지›를 위한 드로잉과 습작이 전시된다.
이불(1964년 영주 출생)은 20세기 문화사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적인 성 역할에서부터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이상주의의 실패에 대한 인식 등 광대한 범위의 주제를 다루는 그녀의 작업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비평론, 미술사, 공상과학소설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각을 전공했지만 곧 퍼포먼스 등 다른 매체로 전향한 작가는 1990년대 기계와 유기체의 혼종인 사이보그 시리즈 조각 작업으로 미술계에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최근 압도적인 설치 작업을 통해 미래를 조망하는 서사와 진보의 개념이 현재와 미래에 우리의 세계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있다. 1987년 홍익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의 SCAD 미술관(2019), 최근에는 런던의 헤이워드 미술관(2018), 베를린의 그로피우스바우(2018~2019)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다. 최근에 참여한 주요 단체전으로는 «팬텀기, 미래 속 사이버펑크»(타이 쿤 컨템포러리, 홍콩, 2019)와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