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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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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 사이 I›, 1981
    수채화
    193.9 × 259.1 cm
    동강대학교 박물관 소장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당시 «광주통일미술제»라는 제목으로 안티비엔날레를 기획한 강연균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후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1980년 작품을 시작해 1981년도에 완성한 ‹하늘과 땅 사이 1›(1981)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작가의 반응을 담은 연작 중 첫 작품이다. 해당 연작은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2014)에도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도드라진 특색 없이 비탄 속에 뒤틀린 시신과 육체를 통해 광주에서의 잔혹한 군사 압제로 인한 공포와 번민, 슬픔으로 고통받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1980년 6, 7월 즈음부터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는 5·18민주화운동과 그로 인한 죽음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당시의 사건을 기록하고자 했다.

     

    강연균(1941년 광주 출생)은 1980년 5·18 이후 광주의 현실을 미술을 통해 알리고자 했으며, 1980년대 민중미술이 활성화되는데 기여했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전남일보』 문화부 기자로 재직했고, 이후 로댕화실을 운영하며 수채화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펼쳤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지도위원(1988) 및 공동의장(1992~1995)을 역임했고,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안티비엔날레를 조직해, «광주통일미술제»라는 이름으로 망월묘역 야외 전시에 전국의 200여 작가 작품을 소개했다. 이후 광주시립미술관장 겸 광주비엔날레 사무차장(1996~1998)을 역임했다.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고, 1996년 광주 오월시민상, 1998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